어린이 안전대책,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2018-08-14       교통신문

[교통신문] 얼마 전 폭염 속에서 어린이집 통원차량에 4살 아이가 갇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서둘러 어린이집에 이어 유치원, 초등학교, 특수학교 통학버스에도 ‘슬리핑차일드체크(Sleeping Child Check)’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국회에서는 13세 미만 아동이 타는 학원이나 어린이집 등의 통원차량도 규제대상이 되도록 도로교통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슬리핑차일드체크를 어떤 것으로 할 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운전자가 맨 뒷좌석에 설치된 벨을 눌러야 경광등이 꺼지게 되는 벨방식이 유력하다.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설치와 운영이 간편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문제는 운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고장을 내거나 벨이 울리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특히 지입 전세버스 등 영세한 차주가 어린이 등을 통학·통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상운송 행위를 함께 하는 경우에는 더욱 운전자를 규제하기 어렵다. 때문에 슬리핑차일드체크 설치 의무화가 당장 이번 사건의 대응책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궁극적인 안전대책이 될 수는 없다.

이번 통원차량 어린이 사망사고는 관련 법규정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2013년 세 살배기 세림이가 통원차량에 치어 사망하면서 가칭 ‘세림이법’이 만들어져 통학차량에 인솔교사가 동승하도록 의무화 되었다. 이번 사고는 인솔교사든 운전자든 아이가 자고 있는지 확인만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어른들이 자기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고만 나면 사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운전자와 인솔교사에게 돌리고 이들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도로이용자, 차량, 교통환경 등 세 요인을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고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도로이용자, 차량, 교통환경 등으로 구성되는 시스템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는 ‘시스템적 접근방식’(System approach)은 운전자나 인솔교사가 실수를 하더라도 어린이가 사망이나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산업분야에서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심각한 부상이나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작업 환경을 조성해 나가듯, 교통분야에서도 개인의 실수를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실수를 감안한 차량 및 도로의 설계와 운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통환경도 어린이의 예측 불가능한 활동특성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교통환경은 교통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어린이의 행동오류를 허용하는 공간이 바람직하다. 신호기, 표지판, 펜스 등은 어린이의 활동성을 억제하는 시설이면서 동시에 판단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과 어린이가 많이 이동하는 통학로나 생활도로 등은 어린이의 통행우선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강제적인 속도억제시설이 병행되어야 한다. 통과차량의 속도가 낮을수록 교통안전도는 높아지고 범죄발생률은 낮아지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며 사고의 원인은 이 시스템에 관계된 모든 구성요소의 책임이라고 관점을 바꾼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해 경북 김천시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대상으로 통신형 디지털 운행기록 장치를 장착했다. 학부모는 이 기기를 장착한 차량의 정보를 앱을 통하여 받아볼 수 있다. 내 아이가 탄 차가 어디에 있는지, 위험하게 운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차에서 제대로 내렸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어린이 통학버스의 운행기록을 분석하여 위험운전행동 다발구간의 시설개선과 안전운전 기준 위반에 대한 현장단속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올해 교육부는 8억5000만원을 들여 유치원과 초·중학교와 특수학교에서 직영하는 통학버스 약 500대에 단말기를 설치하여 통학버스의 위치정보를 제공하고 비컨방식으로 아이의 승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단말기와 디지털 운행기록계 분석기능을 연계하여 통학버스 운전자의 위험운전 행동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운전자 교정교육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8만여 대가 되는 어린이 통학버스와 통원차량에 실시간 위치관제 시스템과 승하차 정보서비스가 도입된다면 학부모와 정부·공공기관이 책임 있는 구성요소로 나서게 된다. 학부모는 상시적으로 난폭·과속운전 여부와 내 아이가 안전하게 승하차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함으로써 운전자의 위법하거나 위험한 운전행태를 막을 수 있다. 정부·공공기관은 상시 점검체계를 갖추고 어린이 통학차량의 안전관리와 안전교육의 시행, 어린이에게 보다 안전한 교통환경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어린이 안전대책을 시스템적으로 정비하여 추진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