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5만명 시대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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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5만명 시대의 명암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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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희생 강요 ‘악전고투’ 여전
 

[교통신문 이재인 기자] 연평균 9.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택배 물류. 지난해 기준 20억 상자를 넘어서면서 매출액 5조원대 진입을 앞두고 있고, 기록 경신도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거래규모와 시장의 투자가치 등에는 장밋빛 전망이 예고되고 있으나, 택배 영업 취급점이나 도급 화물운송·물류업체와의 위수탁 계약에 의한 택배기사의 미래가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이다.

‘상생협력·동반성장’이라는 정책기조에 따라 여러 분야에서 성공사례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으나, 택배가 포함돼 있는 화물운송·물류시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택배기사는 만능?

이용자의 요구와 선택의 폭이 확대되면서 택배상품과 서비스 범주는 다변화되고 있다.

이와 비례해 택배기사의 어깨는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다.

취급·대리점·영업소에서 위탁한 물량을 집배송하면 됐던 종전의 업무는, 관내 터미널로 이송된 상품을 분류·상차하고 문전배송과 집하업무가 종료된 후에는 송장 분류와 전산등록까지 해야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이용자 중심, 고객맞춤형 서비스’의 슬로건을 내건 업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택배기사가 짊어져야 할 것은 많아졌다.

배송 전에는 알림 메시지를, 부재중 수취인과 직접 통화·조치해야 하는데다, 서비스 만족도와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택배기사 사칭 범죄예방 활동을 비롯해 지자체와의 업무협약 등 본사 방침에 따라 진행되는 여러 프로그램에 동원되고 있다.

추가 업무에 대한 시간·경제적 보상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사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문제 제기된 안심번호 비용 전가 사건을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홈쇼핑과 온라인쇼핑몰에서 개인정보 노출 방지 목적으로 도입·사용하고 있는 안심번호 운영비를 택배기사에게 부담케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적 공방으로 치닫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된 내용을 보면, 이동통신사업자는 안심번호 사업자에게 높은 접속료를 지불하기 위해 택배기사에게 050으로 시작되는 가상번호 발신에 대한 통화료를 부과하고 이동통신사를 거쳐 안심번호 사업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홈쇼핑과 온라인쇼핑몰의 필요에 의해 도입된 만큼 해당 비용을 위탁업체가 부담하게 조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1인3역을 해야 하는 택배기사의 사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되고 있다.

개인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위수탁 계약에 의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이기 때문이다.

지역 범죄사고 예방을 명분삼아 택배기사들은 위드폴(WITH POL) 요원으로 위촉, 집배송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고현장 목격 시 비상연락망을 통해 제보하는 패트롤로서 방법활동을 수행해야 하는가 하면, 할당받은 업무와는 별개인 지역사회의 각종 행사에 투입되기도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로켓배송·지정배송·맞춤배송 외에 올 들어 개시된 새벽배송까지, 택배기사가 감당해야 할 몫은 계속 늘고 있다.

▲택배기사 옥죄는 조건부 관계

모바일 O2O 채널 등 접근·편의성이 용이해지면서 택배시장 규모도 날로 커지는 중이다.

택배이용 거래와 노출 빈도가 늘고 있는데다, 잠재소비력이 높은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되면서 택배 물류의 투자가치는 뛰고 있다.

 

그러나 근로환경 개선의 방법론을 두고 참여자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데서 비롯된 부작용이 만만찮다.

특히 금전적 보상 문제에 있어서는 택배기사와 본사, 도급 협력사들과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고, 계약서상 ‘갑’이 지시한 온갖 일들을 겸하면서 만능이 돼야만 생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업체마다 상이하나, 계약형태와 계약내용을 보면 직접고용 택배기사의 비중은 줄고 있는 추세다.

통상적으로 택배 물류기업과 대리점 운영계약이 체결된 화물운송업체에게 위탁업무가 내려지면 운송사와 용역계약이 체결된 지입차주가 택배배송을 수행하게 돼 있다.

이들의 종속관계는 1.5t미만 집배송 택배차에 부여되는 택배전용넘버(배 번호판)가 등장하면서 골이 깊어졌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화물운송시장 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초의 배 번호판 공급 시기(2012~2013년)를 전후로 70~80%를 차지했던 종전의 지입차주 비율은 하락세를 보였고, 지난해 3분기 들어서는 35%선이 붕괴됐다.

정부가 정한 ‘택배용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허가조건’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택배업체와의 전속 운송계약을 통해야만 넘버가 발급되며, 2년마다 갱신하게 돼 있는 번호판의 효력과 자격유지 여부에 대한 키를 본사와 도급 운송사가 쥐면서다.

택배기사에 대한 지휘 통제권도 눈에 띄게 강해졌다.

배송율과 반품율, CS 클레임 등 건당 벌금을 차등 적용하는 페널티 조항까지 등장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추석명절 택배시장의 특수기가 종료된 이후 암묵적으로 적용돼 왔던 실체가 드러났다.

집배송 택배기사에게 주어지는 건당 수수료가 700~800원인 반면, 고객 클레임 발생 시 해당 택배기사는 수수료의 1400배에 달하는 100만원의 위약금을 내야 하는 ‘징벌적 페널티’의 사실관계가 확인됐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5만여명의 택배기사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산적한 과제

지난해 4조 7444억원의 매출을 올린 택배업계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택배 물류사와 영업 대리점, 하청 운송사와 택배기사로 이어지는 거래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중간 수수료를 비롯해 서비스 요금 현실화, 근로조건·환경개선, 희생에 따른 다자간 책임 연대 등이 주요이슈다.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배송단가와 다단계 계약에 의한 중간 수수료가 조정될지가 관건이다.

업체간 과열경쟁으로 단가는 하락하고 택배기사의 수수료가 줄면서 순수입 저하와 기존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면서다.

주 6일 일평균 14시간 이상,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는데 있어 금전적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택배기사는 일반적으로 배송·집하 건수에 따른 수수료 지급방식으로 보수를 받고 있는데, 가령 배송비 2500원 건을 처리하게 되면, 본사가 영업·대리점에 800원을 배분하고, 여기서 부가세(10%)와 소득세(3.3%), 지입 관리비(5%선)를 제한 나머지 654원 정도를 택배기사가 가져가게 된다.

집하에 따른 정산 비용은 업체·지역별로 상이한데 수도권을 기준으로 기업화물은 440원, 개인화물은 870원 수준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반면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이기에 근로기준법은 적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휴가는 인정되지 않고 있고, 병가·경조사 등 개인사유로 업무가 불가할 시에는 택배기사 본인의 사비로 용차를 수배해 집배송 업무를 처리하게 돼 있다.

이는 택배업체의 지시에 따라 배송구역을 할당받고 규칙적인 출근시간과 작업수칙을 준수해야 하며, 위반 시에는 택배기사에게 주어지는 수수료를 감액한다는 내용의 운영지침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택배회사가 정한 조건부가 현장에 적용되고 있기에 사용종속성을 인정하고, 택배기사와의 계약한 업체들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솔루션으로 제안되고 있는 정책대안으로는 ▲택배기사의 단체설립 활성화 ▲근무시간 규제 및 가산수당 지급 ▲집배송 업무만 투입·관리 ▲택배기사 수수료 하한선 정립 ▲불공정 위수탁 계약 근절 ▲택배기사 보호가이드라인 제정·보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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