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한국GM 사태 … 해결 방안 ‘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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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한국GM 사태 … 해결 방안 ‘난관’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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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본사, 우리정부에 추가지원 요구

[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교통신문 이승한 기자] 한국GM 위기 사태가 한국사회와 경제를 뒤흔들 뇌관이 되고 있다. 이해 당사자인 GM과 노조는 물론 정부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문제 해결을 모색하면서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결되더라도 장기적인 대안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GM 철수설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달 13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서부터다. 공장 가동 중단과 동시에 한국GM은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며 정부에 지원을 요구했다.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까지 방한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노조를 압박했다. 배리 엥글 사장은 정부에 추가 재정 지원이 없으면 경영 정상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노조에는 임금 삭감 등 자구 노력을 보여야 신차 배정을 포함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정부는 일단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자구책에는 중장기 경영개선과 시설투자 계획은 물론, 고금리 대출 등 한국GM 경영 상황을 악화시킨 문제 해소 방안 등이 담겨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철수와 잔류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정치권은 정부가 부실경영 책임을 밝히는 것은 물론, 생산시설이 들어선 지역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GM 사태는 한미 양국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서 트럼프 美대통령은 군산공장 폐쇄로 자국 내 시설 활성화가 가능해졌다며 환영의사를 밝혔다. “美행정부가 군산공장 폐쇄 조치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협상카드로 삼을 것”이라는 외신 분석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2일 한국GM 경영상황 판단을 위해 산업은행과 GM이 공동으로 재무실사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GM 본사 경영 정상화 자구책과 정부 재정 지원책은 실사 결과를 토대로 마련된다. 통상 기업 재무실사는 2~3개월 정도 걸리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빠르게 마무리될 가능성도 크다. 희망퇴직 신청자도 3000명에 이르렀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군산공장은 전체 직원 20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신청했고, 부평과 창원 등지에서도 제법 많은 신청자가 나왔다. 이는 당초 회사 인원 감축 목표치에 근접한 수치다.

▲ 여야와 면담 중인 배리앵글 사장과 카허 카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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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공장은 2014년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철수하면서 수출 물량이 막히자 가동률이 급속히 떨어졌다. 폐쇄가 단행되기 직전 공장 가동률은 20%대에 머물렀고, 가동 일은 한 달에 5~6일에 그쳤다. 2011년 27만대였던 생산량은 지난해 3만4000대까지 떨어졌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조971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7000억원 이상 추가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도 2013년 18조3783억원이던 것이 2014년 14조2797억원으로 급감했다. 2016년 매출(12조3116억원)은 2013년 대비 33.0% 감소했다. 같은 기간 판매량은 78만518대에서 23.5% 줄어든 59만7165대에 그쳤다.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2% 하락한 52만4547대를 기록했다.

GM 본사는 증자 형태 추가 투자에 나서고, 30만대 이상 수출할 수 있는 신차 생산을 한국에 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투자에 일부 참여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투자 규모는 3조원을 약간 초과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투자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면 GM이 향후 10년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간 50만대 생산 규모를 유지시킬 것이란 소문이 퍼졌지만, 이에 대해 정부와 GM 모두 “확인된 것 없다”며 부인한 상태다.

정부는 GM 본사의 증자와 재정 지원을 함께 묶어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산업은행이 한국GM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도 경영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정부 딜레마는 한국GM을 시장 논리에 떠넘겨 외면 할 수도 없고, 거금을 무턱대고 지원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일자리 창출을 국정과제로 꼽고 있는 현 정부 입장에서 한국GM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 군산뿐만 아니라 회사가 철수하면 직간접적으로 최대 수십 만 명 국민이 생계 곤란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GM 요구를 수용할 수도 없다. 수천 명 직원 실직을 막으려고 부실 덩어리 업체에 대규모 세금을 투입하는 데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다. 정부가 진행 중인 재무실사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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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노조는 군산공장 폐쇄와 회사 위기 원인을 낮은 노동생산성(이하 생산성)에서만 찾는 것은 근로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처사라며 반발했다. 노조는 “회사가 위기에 빠진 것은 GM이 한국에 과도하게 비용과 이자를 부담시킨 데다 회사가 시장 상황을 오판한 경영을 지속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 취소와 현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사측이 이를 거부한 채 추가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임금 삭감을 고수할 경우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였다.

공장 폐쇄에 직면한 군산 민심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민사회가 동요했고 불안감이 확산됐는데, 실제 폐쇄로 이어지자 배신감과 박탈감에 휩싸인 분위기다. 정부까지 군산공장 폐쇄를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부와 GM이 부평과 창원 시설을 살리려고 협상을 진행하면서 군산은 완전히 배제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산공장은 잘 나갈 때 지역 수출 절반을 담당했다. 가동률이 20%까지 떨어진 지난해에도 지역 생산과 수출 5분의 1을 차지했을 만큼 군산 경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실제 많은 시민들이 공장 폐쇄를 지역경제 몰락과 동일시했다. 많은 군산 지역 주민들은 사태 해결을 GM이 주도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주길 바란다. GM을 대신해 국내 업체가 공장을 인수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두 번 다시 외국자본이 개입되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여론도 확인할 수 있다.

회사 철수설과 맞물려 생산시설이 있는 부평(인천)과 창원 여론도 좋지 않다. 아직은 공장 가동률이 높지만, 한국GM이 계속 내수 시장에서 고전해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 군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이번 한국GM 사태는 2014년 이후 재편되고 있는 GM 본사 글로벌 전략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게 업계와 자동차 전문가 판단이다. 이에 더해 경영 실패로 대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떨어뜨린 한국GM 사측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다’고 비판받는 노조가 함께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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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업계는 한국GM 경영 정상화는 GM 본사가 어느 정도까지 한국을 중시하고 신차 배정과 투자에 적극 나서냐에 달렸다고 본다. GM 스스로 자구 노력이 없다면 정부 재정 지원에도 회사가 되살아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GM이 언제쯤 신차 생산 물량을 한국에 배정할 지가 초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통상 생산라인 준비 등을 감안해 신차가 생산되려면 배정되더라도 2~3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상당 기간 GM이 한국 내 생산시설을 유지시켜야 한다.

부실 경영 문제도 해결이 시급하다. 현재 한국GM은 고금리로 본사에서 3조원을 차입해 이자 부담을 높였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조8580억원에 이르는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본사에 지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본사가 부품 비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함으로써 한국GM 원가 비중이 94%에 이른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자본잠식에 빠진 원인을 밝힐 재무실사에서 이런 문제가 집중 조사된다. 산업은행은 “실사에서 부실 경영 원인과 책임소지가 밝혀져야 정부 차원 재정 지원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 부실이 장기화되는 동안 한국GM 생산성은 크게 떨어졌다. ‘하버리포트’는 지난 2016년 전 세계 148개 주요 자동차 공장 생산성을 비교한 결과 한국GM 군산공장이 130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GM이 노조 측에 ‘임금 삭감에 동의해야 잔류를 보장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것도 낮은 생산성에 주목하고 있어서다. 이는 올해 노사 임금단체협상 최대 난제다. 이미 지난 7일 진행된 4차 임금교섭에서 노사 양측이 이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철수라는 최악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에서도 노사가 타협하지 못하면서 양측 모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노조는 적자가 시작된 2014년부터 매년 3~5% 기본급을 인상시켰고 고액 성과급을 받았다. 아울러 2016년과 2017년에는 임금협상 과정에서 파업까지 했다. 회사 또한 노조가 요구한 신차 배정 등을 포함한 ‘미래 발전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GM이 2월에 희망퇴직을 받았지만 추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낮은 생산성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어서다. 고임금 문제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여겨진다. 회사 부인에도 불구하고 ‘임단협이 타결되지 않으면 전체 인력 30% 정도를 더 줄일 것’이라는 소문이 이 때문에 꾸준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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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와 시민사회계는 정부가 일자리에 발목 잡혀 무조건적인 재정 지원에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이 다시 살아난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사 해결도 중요한 포인트다. GM 본사가 투자 조건으로 내건 항목은 생산성을 어떻게 높이는 가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선 노사의 대승적 판단과 양보가 선행돼야한다. 생산성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GM이 우호적인 대책을 한국에 내놓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공장 폐쇄와 철수 문제를 낮은 생산성에서만 찾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일부 전문가는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생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번 사태 핵심은 GM 본사가 추구하는 글로벌 정책과 그 안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검증해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와 GM이 일정 수준 합의를 이뤄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완전한 해결이 될 수 없을 것이란 회의적 분석도 나왔다. 수익성 낮은 시장에서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하는 ‘메리 바라 회장의 GM’이 버티고 있는 한 언제든 한국 철수설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메리 바라가 이끄는 GM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부진한 사업장을 미련 없이 정리하는 가운데 미래차를 지속성장 원동력으로 삼아 집중 투자하고 있다”며 “한국은 GM에게 있어 고비용 저효율 생산거점으로 간주되는 지역으로, 이윤이 적은 소형차와 경차 외에 미래차 개발·생산 시설이 열악해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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